2020. 8. 11. 08:25ㆍ두번째 서랍: 페미니스트 교사
"이 침묵, 이 머뭇거림을 나는 한 때 견디지 못했다.(다가오는 말들, 148p)"
아이들을 가르치며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사소하게는 '오늘 아침은 뭘 먹고 왔나요?', '주말엔 뭐했나요?' 일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매 수업시간에는 학습할 내용과 관련된 질문들을 던졌다.
우스운 건, 질문을 던져놓고 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숨막혔단 거다.
질문을 듣고 답을 하기 위해선 생각하는 시간이 분명 필요한데 나는 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했다.
침묵하고 있는 아이들이 답을 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긴 건지, 그저 멍때리고 있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침묵이 길어지면 큰 일이 난 것처럼 내가 자문자답 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멋쩍게 아이들의 동의를 구했다. "그치?"
나는 정말 아이들의 답이 궁금했던 것인가.
나는 아이들이 정답을 빨리 이야기해주길 바랬다.
내가 예상한 답을 착착 내뱉어주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허나 답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예상한 답이 아닌 엉뚱한 답이 돌아오면 그 때부터 내 마음은 비상사태다. '이건 예상에 없던 건데! 어떡하지? 내 계획은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데!'
나는 자꾸만 40분 수업 안에서 나만의 연극을 짠다.
'동기유발에선 이 질문을 던지자, 그러면 이런 답이 나오겠지? 그러면 이렇게 답하고 넘어가자.'
이런 식으로 다음, 다음, 다음이 이어져있는 한 편의 연극.
나와 아이들은 그 연극 속 배우다.
그런데 나와 합을 맞춰야 할 배우가 갑자기 대본에 없는 대사를 한다!
나는 당황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서둘러 포장하며 다음 씬으로 넘어간다.
나는 연극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관객 평점을 신경쓰며 불안해한다.
수업은 한 편의 짜여진 연극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해야하는 게임이 아니다.
40분이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더 진솔하게 묻고,
더 오래도록 기다리고,
더 아이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침묵을 견디는 마음의 힘을 키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