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건 by.김한민

2020. 11. 2. 08:00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아무튼, 비건 by.김한민

 

비건(Vegan). 

단순한 채식주의자를 넘어 동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칭한다.

왜 동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존재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고통을 강제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 고통의 얼굴은 우리가 식탁에서 접하는 '음식'에선 절대 상상하기 어렵다.

'삼겹살', '스테이크', '곱창', '치킨', '베이징덕', '연어초밥'....

돼지는 바삭하게 구울수록 맛있는 삼겹살일 뿐. 돼지가 아니다.

소는 마블링이 훌륭하면 등급이 올라가는 고깃덩어리일 뿐. 소가 아니다.

닭은 금요일만 되면 생각나는 불금의 대표 음식 치킨일 뿐. 닭이 아니다.

그 고통의 소리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별 생각없이 걸쳐입는 '옷'에선 절대 들리지 않는다.

'패딩', '코트', '목도리', '가방'..

털이 윤기가 도는지, 얼마나 부드러운지 중요할 뿐. 누구의 비명과 함께 탄생했는지 모른다.

진짜 가죽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 어떤 동물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기도 한다는 것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직접 동물을 잡아야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거란 이야기가 있다.

동물을 잡는 과정은 너무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동물을 한 마리도 아닌, 대량으로 사육하고 잡아야 한다면.(a.k.a.공장식 축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에 따른 공급을 가장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기 위해선 동물이 죽음을 최소한의 고통 속에서 맞을 권리따윈 사라지기 십상이다.

 

사실 이 책은 환경에 관심 많은 친구를 위해 고른 책이었고, 그 친구에게 전달할 목적이었지 내가 읽을 생각은 없었다.

비건의 가치에는 동의했으나,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이 비건으로서의 삶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음식을 먹는 맛의 즐거움'이 너무 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평범하고 무료하고 지치는 일상을 신나는 하루로 만들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기'가 없으면 메인 음식이 없는 것 같아 허전하고,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고기'를 먹는 걸로 추억을 쌓았다. 

 

그런데 친구를 빨리 만나지 못해 책이 꽤 오랜시간 우리집에 머물렀고

어느 날 문득, 

책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여지는 마음을 다잡고 책을 열었다.

그리고 책은 첫 장부터 강렬하게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로 시작했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비건이 되야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동물을 나와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동물도 나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동물을 사육하고, 도살하는 방식은 너무도 잔인하고 동물 학대적이다.

 

-동물을 사육하며 물과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된다.

 

-동물이 배출하는 탄소는 탄소 전체 배출량의 최소 18%이며 (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배출량이 약 13%)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동물을 키우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숲과 밀림이 무참히 파괴된다. 아마존 산림 파괴의 약 91%가 소를 키우기 위해 벌어진다.

 

-전 세계 곡식의 40% 이상(미국은 70%)이 가축의 먹이로 이용된다. 전 세계에 기아로 허덕이는 인구가 약 8억인데 미국에서 가축에게 먹이는 곡식 양만으로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은 고기를 먹고 병에 걸린다. 열악한 가축 사육 환경 때문에 창궐하는 병균을 억제하기 위해 항생제가 남용되고 있다. 미국 전체 항생제의 80%가 축산업에 쓰인다. 그 외에도 가공육에는 각종 화학물질이 첨가된다. 숯불고기 1킬로그램에는 벤조피렌이 담배 6백 개비 분량만큼, 돼지고기 한 점에는 다이옥신이 담배 1갑 분량만큼 나온다. 강력한 발암물질들이다.

 

-'육식=단백질=힘=건강'은 잘못된 공식이다. 실제는 육류 섭취로 인한 잉여 단백질은 신장을 혹사하고 뼈에도 손상을 주며, 지방질은 인체 조직에 저장되어 당뇨의 원인이 되는 인슐린 저항성으로 변하고, 콜레스테롤은 혈관질환의 원인이 된다. 

 

-'너무 과한 게 문제지 적당히 먹으면 된다. 채식만해서는 건강할 수 없다.'는 거짓말이다. 채식은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며, 단백질은 채소, 곡류 등을 통해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필수 아미노산 및 비필수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 비건은 맛을 더욱 공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다. 우리 입맛은 지나치게 맛의 한 차원에만 집중되어 있다. 촉감, 질감, 식감을 즐기며 양심의 가책 없는 식사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실제로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 예민하게 살아나는 미각을 경험한다.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감자의 촉감, 양념의 짭쪼롬함. 어떤 생명체도 해치치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식사를 경험한다.)

 

이 책은 작고 얇은 책이지만 비건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비건에 대한 동기부여, 진실, 실천까지. 

그리고 비건이 되고자 했을 때 듣는 시시콜콜하고 무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까지도.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 심화된 내용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소개된 영상들 중 동물권 커뮤니티에서 바이블과 같은 작품이라는 <Earthlings>(지구생명체)(2005, 다큐)'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적나라한 실체를 담은 만큼 너무나 잔인하지만, 인생에 있어 한 번은 봐야할 장면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빠와는 <Earthlings>의 최신 버전이라는 <Dominion>(지배자들)(2018, 다큐)을 보았다.

왜냐하면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나의 채식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남편까지 채식을 하도록 강제할 순 없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내가 왜 채식을 하려고 하는지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남편은 영상을 보며 너무 잔인해서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했다. 중간에 못보겠다고도 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봐야하지 않을까'란 말에 끝까지 보았다. 남편의 결단과 의지에 너무 고마웠다. 힘겹게 보고 나서는 남편은 더이상 나에게 왜 채식을 하려고 하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기를 줄여보겠다고 했다.

 

저자는 최대한 완벽한 비건이 되도록 노력하기를 바랐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못할 것 같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싶지는 않다.

'한 사람이 완벽하게 비건을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비건을 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연결되기를 바란다. 


+영상이 미치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쉽사리 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꼭 한 번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장식 축산업의 실체를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Earthlings> 영상을 볼 준비가 되셨다면.

earthlings 지구생명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