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by.고레에다 히로카즈

2020. 8. 9. 00:52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가볍게 머리를 식히려고 읽었던 에세이.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보고 싶었던 일본 영화들을 만든 영화감독의 에세이 집이어서 더 흥미로웠다.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많아 영화를 보고 에세이집을 봤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봐야겠다. 

 

그는 영웅적인 이야기, 선악이 분명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든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단면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쌓아올린다.

평범한 일상 속에 담긴 우리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만든다.

글에서도 그의 그런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과 오래 들여다봄이 느껴졌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니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60p)'

 

'울트라맨은 그 무루치를 쓰러뜨리려 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울트라맨의 '정의'가 크게 흔들렸던 순간이다. 

..아홉 살의 가을, 이때 분명 어른으로 가는 계단을 한 층 밟아올라간 것이다.(94-95p)'

 

나이를 먹을수록 분명했던 것들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나도 한 뼘 자라게 된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우가 영화의 주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주연은 화면에 잡히지 않을 때도 그 영화를 지배하는 사람이다.(143p)'

 

나에게 가장 일치하는 존재는 하나님이란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으실지라도 내 삶을 지배하는 분이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