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11:23ㆍ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나의 감정이 격렬하게 타오르지 않는 사랑을 시작한 사람.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정말 내 평생 반려자가 맞는 걸까 확신하기 어려운 사람.
서로 같음 보다 다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사람.
스스로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꾸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자책하는 사람.
부모님의 사랑을 보며 나는 저런 사랑을 할까봐 두렵다고 생각했던 사람.
육체적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더 편안한 사람.
꼭 읽어 보면 좋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사랑 말고
이런 사랑도 있다는 걸.
사실
이런 사랑이 더 흔하다는 걸.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는 걸지도.
많이 공감했고 그래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하는 사랑에 대해
우리의 모습에 대해
정답지가 있는 마냥
맞는 사랑인가, 이게 사랑 맞나,
고민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의 사랑은 시험지가 아니다.
우리의 사랑은 도화지다.
우리 만의 색으로,
우리 만의 그림을 그려가면 된다.
마음에 담는 문장들
-사랑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자꾸자꾸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다만 그게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 뿐. (7p)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을 보고 자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7p)
-손끝이 닿을 때의 두근거림도,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절절함도 없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터질 것 같지도 않았고, 끝없이 비참해졌다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롤러코스터를 타지도 않았다. 너와의 사랑에서 나는 터벅터벅 걸었다. 너의 마음은 이미 저 멀리 가 있었지만 내가 같은 속도가 아닌 것을 채근하지는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너는 저만치 멀리 있으면서 네가 간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그 길 어귀마다 사랑을 놓아두었다. 혹여 내 걸음이 힘들까, 거친 돌을 고르고 비질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23p)
-이 사랑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모른다. 어쩌면 오늘이 시작인지도 모른다.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지만 내일 너에게 새삼스레 반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 대신 나는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고 있다. 어디가 제일 깊은 지점인지는 아직 모른다. (25p)
-사랑하면서 우리는 결국 바닥을 보이게 된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천장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내 바닥을 인정해줬을 때 나는 너를 내 마음 안으로 다 들여놓을 수 있었다. 내가 너의 바닥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허공에 떠 있지 않았다. 서로의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관계의 시작이었다. (31p)
-갈등을 통해 내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갈등은 아무 의미 없는 생채기만을 남긴다는 것도 알고 있다. (47p)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로도 살아진다는 것을.... 아무튼 모든 게 준비된 시작은 없다. (71p)
-섹스의 목적은 오르가슴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을 부비고 친밀함을 나누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이 사랑의 목적도 어딘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 맞는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밥 먹을 때 때로 서로 휴대전화만 보고 있더라도, 주말에 데이트하지 않고 잠만 쿨쿨 자더라도,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건 아닐지라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관계는 시험지가 아니라 도화지이다. 맞고 틀린 것은 없다. 함께 좋아하는 순간들을 그려나가면 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느끼고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사랑이 될 것이다. (87p)
-사랑은 그 유부초밥이었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유부초밥을 부인할 수도, 모를 수도 없었다. 사랑은 모를 수가 없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네가 사는 방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가는 날이면 왜 보일러를 최고 온도로 맞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지, 왜 그 방 창문에 김이 뽀얗게 서려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아침마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 나에게 알려주는지, 왜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 위에 샌드위치가 놓여 있는지, 왜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네 책꽂이에 한 박스씩 꽂혀 있는지, 왜 네 비밀번호들이 다 나와 관련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은 너였다. 너의 숨소리, 너의 웃음, 너의 눈. 누구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을 본다면 사랑을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더이상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사랑을 알려 하거나, 이해하거나, 분석하거나, 의심하거나,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사랑은 비 오는 날 잊지 말고 챙겨 가라며 문고리에 걸어놓고 간 우산과 함께 걸려 있었고, 내가 울 때마다 떠다 준 미지근한 물 한 잔에 녹아 있었고, 나를 보러 올 때면 늘 달려온다는 너의 발걸음에 묻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사랑은 진한 귤향을 내며 내 손 위에 올려져 있다. (111p)
-결혼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나와 너의 가장 깊은 마음, 사랑이라는 미지의 세계, 진실한 마음의 영역이다. (161p)
-우리가 주고받는 사랑이 순도 100퍼센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사랑 뒤에는 각자의 이기심, 비겁함, 위선, 귀찮음, 무지와 안이함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 (179p)
-관계에서 느끼는 불만족이 내 문제의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자, 문제 해결 방향도 관계가 아닌 나에게 집중되었다. (259p)
-자기 기준대로 상대를 판단하며 살았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다. '지금 있는 그대로 충분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진절머리 나게 싫어하면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느끼게 한 것도 네가 아니라 나였다. 너는 나에게 '너도 충분해'라고 나를 끌어올려주려 했는데, 나는 너에게 '너도 충분하지 않아'라고 끌어내리려 했다.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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