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1. 15:50ㆍ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나는 고집 세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내 생각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가정에서 남동생과 크게 다른 대우를 받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도 여중, 여고를 다니며 직접적으로 남자와 비교당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원하는 대로 공부했고, 원하던 대학에 갔고, 원하던 일을 얻었다.
교직에서는 서로를 '선생님'으로 불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을 계기로, 나는 내 주체성이 훼손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결혼이 나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성별에 따른 역할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나라는 사람과 남편이 될 사람. 독립된 두 개인이 만나 새로운 독립된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시가는 너무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집안이었다.
시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그 가부장적인 문화에 군말 없이 편입되어 '며느리'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기를 바랐다.
나는 거기에 저항했지만 현실에서 '다 팽개쳐버리는' 극단을 적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입장과 남편의 입장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계속해서 불편했다.
우리 세대엔 사라진 줄 알았던 가부장제.
그 가부장제가 여전히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결혼 이후의 내가 가부장제와 겪는 갈등이 극심했을 때, SNS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만화가 바로 '며느라기'였다.
한 편, 한 편 얼마나 공감하며 봤는지 모른다.
불편한데 무엇이 왜 불편한 건지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구체화된 언어로 정리되었다.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진 건지 너무도 익숙해서 몰랐던 장면들도 만화의 장면으로 표현되니 뭐가 잘못된 건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만화뿐 아니라 달린 댓글들까지도 작품이 되는 공간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 댓글을 통해 명명백백히 공개되었다.
대한민국은 경제, 기술적으론 세계에서 앞서가는 선진국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전통사회(a.k.a. 조선시대)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문화지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라고.
그렇게 나는 가부장제 타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그 당시(2017) 한국 사회에선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페미니즘(feminism)이란 페미니즘이란, 모든 성차별과 억압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주의다. 다만 성차별이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이어져오고 있기에 현재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사회 구조적으로 이루어져왔는데 그 구조를 '가부장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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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타파'를 원했던 나는 페미니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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