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존경 by.이슬아

2020. 4. 17. 00:30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깨끗한 존경은 이슬아의 인터뷰집이다.

이슬아의 세계가 자기 서사에서 사회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읽는 나의 세계도 조금은 확장되어간다.

좋은 인터뷰어인 이슬아를 통해 듣는 농축된 삶의 이야기들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슬아는 나를 떨리게 하는 존재다.

그런 이슬아가 '이슬아의 작가'를 만나며 긴장하고 자신에 대해 절망할 때 

그 긴장과 절망이 꼭 나의 마음 같아서,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 담는 문장들


이슬아X정혜윤

 

정:저는 '다시'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드러워요. 다시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용서받고 다시 힘을 얻고 다시 깨졌던 관계는 복원되고. 어쨌든 '다시'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이미 있는, 새로 출발하는 능력요.

 

정:자신한테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 같아요. 인생에 일어난 의미 있는 수많은 일들은 '확장'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글은 확장이 있고 시선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이에요. 다른 생물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구름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그는 글쓰기를 자아 표현이 아니라, 자아의 형성이자 해방이자 이동이라고 말했다. 글쓰기의 방향을 잃을 때마다 어째서 내가 정혜윤 칸 앞에 섰는지 나는 이제야 이해하겠따. 자아 표현에 그치는 내 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시선의 이동과 확장에 성공해보고 싶어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던 거다. 저 쪽 세계로 가자, 이렇게 말고 저렇게 살자, 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던 거다. 책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정혜윤이라는 사람에 대해 몇 번이나 감탄하고 동시에 이슬아라는 사람에 대해 몇 번이나 절망했다. 감탄과 절망. 이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새로운 나를 향해 간다.

 


이슬아X김한민

 

-어떤 주제에 반박하기 위해 취약 계층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사람들이 싫어요. 제가 동물권을 얘기하면 이렇게 묻죠. "넌 아프리카 애들은 생각 안 해?"

 

-비건이 아닌 사회에서 비건 식생활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완벽주의로 하려다가 포기해서 안 할 바에야, 가끔씩 실패하더라도 긴 텀을 두고 많은 동물을 살리는 게 중요해요. 사회 자체를 더 비건 지향으로 만들면 지금보다 쉬워지겠죠. 비건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를 강경하게 말하고, 오히려 비건인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너그럽게 말해요. 이미 힘들게 실천하고 있으니까. 자신을 너무 힘들게 만들지 말고 가끔 어쩔 수 없이 원칙을 어기더라도 지속가능하게 하자고 말해요.

 

커다란 몰과 실내공간들이 점점 연결되면서, 계속 실내에서 지낼 수 있는 모델로 가는 거예요. 환경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밖에 안 나가도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게, 배달 서비스와 실내 몰들과 공기청정기로 이루어진. 

 

오래 가는 것에 대해 저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꼭 지속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끝내느냐의 문제도 되게 중요해요.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셨나요? 저는 처음부터 마무리를 좀 생각하는 것 같아요. 

 

페소아는 시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하나의 죽음"이라고 말해요. 저는 어떤 매듭 짓기도 하나의 죽음이라고, 혹은 고갈된 것도 하나의 죽음이라고 봐요. 연인 사이에서도 감정이 고갈되었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용기를 내서 말할 필요가 있어요. '성격 차이'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라고 흐지부지 흐리멍덩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요.

 

누군가를 내 안에 둘 수 있는 것도 유머와 여유죠.

 


이슬아X유진목

 

예전에 친구들이 다들 저보다 상황이 나았다고 말씀드렸죠? 열등감을 심하게 지닌 적이 한때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열등감을 계속 가진 채로는 내가 양지의 삶을 살 수 없겠더라고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양질의 삶을 살 수 없겠다는 느낌이요. 그래서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남의 좋은 것을 저도 좋아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걸 좋아하기로 마음을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되게 좋더라고요. 제 옆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더라고요.

 


이슬아X김원영

 

이: 장애인을 만날 때면 실수를 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무례한 실수, 혹은 무례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더 무례해지는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서요. 무식이 탄로 날까 걱정하는 마음이 늘 앞섰어요. 그런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 우정을 바탕으로 일면 함부로도 말할 수 있고 농담도 하고 싶은 마음이요. 차근차근 해보겠습니다.

 

김:보수적이고 진부한 관점에서는 장애인을 너무 동정이나 감동의 서사로만 보고, 정반대로 진보적인 인권 운동의 시선에서는 너무 정치적 투사처럼 보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의 욕망은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어느 쪽이든 신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죠. 계속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거예요. 

저한테는 몸이 되게 중요했어요. 제가 이십 대 때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은 '네가 세상을 바꾸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이런 말 아니고 그냥, '나는 네 왼쪽 어깨가 좋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신체요. 

 

티리온('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배우)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 특히 자기 신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관심이 많은 장애인들한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드라마의 시즌이 거듭될수록 '사람이 선명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선명하고, 그 선명도가 형태를 압도한다는 느낌이요.

 

수없이 교차하는 정체성 속에서 우리는 사실 하나의 욕망을 공유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 욕망이란 이런 것이다. (...) 한 사람의 개인으로 꿈꾸고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다 죽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 "네 주제에 남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려고 욕심내면 안 된다."라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세속적이고 덧없는 욕망을 품어보는 일이야말로 전복적이고 저항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바로 그 "모든 것을 다 해본 후에 삶이 덧없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고르게 배분되어야 할 귀중한 삶의 기회가 아닌가?

-김원영, [희망 대신 욕망], 9~13쪽.

 

그는 질문했다. 신체에 대한 혐오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진정한 부정이고, 그에 대한 무심함이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완전한 무시가 아닐까? 사랑은 물론이고 우정의 성립에서도 개인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매력의 기준이 정의롭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라는 명령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저 사람을 사랑하라는 도덕적 의무를 지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법과 사회과학의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언어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