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by.요조, 임경선

2020. 4. 5. 02:10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by.요조, 임경선

 


세대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 두 사람

나도 세대가 다른 친구 H가 떠올랐다. 나는 30대 그녀는 40대. 하나뿐인 나의 40대 친구다.

그녀와 대화할 때면 나이는 잊게된다. 그녀를 통해 나는 세대가 다른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는 친구.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사는 친구. 그런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다른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다

나와 같은 생각을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잘'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요조와 임경선은 서로 다른 생각도 솔직하게 나눈다. 하지만 다름이 관계를 해치지 않고 더 풍성하게 한다.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기에. 나도 내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환일기

중학교 때 한창 교환일기가 유행했었다. 친구 사이지만 사랑한다는 뜨거운 고백으로 매번 글맺음을 하곤 했다.

친구가 내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기였다. 지금 교환일기를 쓴다면 어떨까?

여전히 감정이 담기게 되겠지만.. 그때보다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알고 싶은 친구. 생각이 궁금한 친구. 좋아하는 친구. 추억이 떠오르는 친구. 글쓰기를 응원하는 친구.

이런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담는 문장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행동을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비난하고, 그로 인해 후회하고 자책감을 느낄지도 몰라. 하지만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해나 민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소음에 휘둘릴 필요가 없더라. 또한 완연한 어른이 되어 솔직하기로 작정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하지만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17-18p)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언니도 아시죠. 타인이 민망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솔직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요. 반면 누군가는 반대로 타인의 상처를 희석시켜주려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내면서 솔직을 사용하죠.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끝끝내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요. (24p)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하려는 말이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내가 그 주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스스로의 머리로 사유하고 성찰했는지. 내가 진심으로 깊이 신뢰하고 확신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 거창한 주제나 담론이 아니라도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라면 나는 어색해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에게-거기 있는 모두가 아니더라도-제대로 가닿을 거야. (81p)

 

불특정 다수 앞에 나선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한테 관심 있는 건 결코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 그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겸허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지리라 믿어. (83-84p)

 

단지 '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끝'이 썩 아름답지 않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실패나 불행의 경험으로 치부하는 것은 상대한테도 나한테도 너무 가혹한 처사야. 그 시간들 모두가 우리 인생의 대체하지 못할 시간들이었으니까. (95p)

 

내가 나의 생각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의 생각도 존중은 하되, 휘두르지도 휘둘리지도 말자. (110p)

 

아무리 옳은 대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정의로운 이론을 믿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극단적이 될 때는 아주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극단적 태도가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만 보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맞고 나랑 의견이 다르면 너넨 다 적이야, 악이야, 이렇게 몰아가기 쉽고요.

 

 정치적 입장, 종교, 페미니즘, 독서, 채식... 다 중요하고 소중한 우리의 신념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 신념이 옳다고 해도 완전히 극단으로 밀고 가버리면, 내 신념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파괴하고 싶어서 견딜수가 없게 되는 것 같아요. 

 

 늘 깨어서 세상을 바로 보고 옳은 편에 서야 하지만, 옳은 편에 서 있으면서도 깨어 있어야 해요. 옳은 편에 섰다고 안심하면서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편이라는 명분에 취해서 옳지 않은 편에 선 사람들보다 더 깜깜한 혐오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나 자신을 의심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16-117p)

 

'기분좋게 설득당한다'라는 요소는 무척 중요한 부분이야. 왜냐하면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우치거나, 혹은 미처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내 지평이 커지는 거니까. (124p)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도 싫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은 조심스러움을 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가끔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야, 너 바쁜 거 아는데 그대로 나랑 이번 주말에 카레를 먹으러 가야 해. 거기 카레 완전 네 스타일이야' 같은 연락은, 쭈뼛쭈뼛 간만 보다 끝나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참으로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에요. (148p)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한번 멈춰서고 이 말을 해도 될까 말까 신중해지기라도 한다면..그건 이미 불편한 관계이자 어느 정도 공적인 관계라고 해야겠지. 상대의 반응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가까운 인간관계라고 해서 사려 깊음이 없는 것은 아니야.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노는 것 같지만, 실은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볼 거 다 봐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요새는 몸과 마음을 '사리는' 시대잖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너무들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워하고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 가까워지면 과한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클까봐 지레 겁을 먹고,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억울해하고...그러다보니 일종의 인간관계 처세술처럼 적절한 거리를 둬서 나를 지키겠다, 같은 강박이 생기는데 그게 또 역으로 보면 그만큼 개입하진 않겠다, 식의 발뺌처럼 느껴져서 서운하고 외롭기도 하지.

 

 이 시대엔 아무 생각 없이, 언제라도, 아무 말이나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정겹고 소중한 일인지 몰라! 나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뜻하지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 해도 상대가 그것에 대해 바로 내게 투정할 수 있고, '나는 저 사람한테는 상처받아도 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신뢰감은 무척 귀한 거야. (151-152p)

 

행여 두 사람의 관계가 나중에 멀어진다고 해도, 나는 항상 그 사람과 가장 좋았던 시절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고 기억할 거야.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까. (153p)

 

'쓴소리'를 기꺼이 해주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절감할수록 저 역시 그런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에게 엄히 묻게 돼요.

아무리 아픈 말이라도 말하겠다는 입. 아무리 아픈 말이라도 듣겠다는 귀. 어른의 우정을 위해 꼭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체기관인 것 같아요. (162p)

 

내가 나를 억누르고 상대가 원하는 바대로 하게 두면, 그리고 아무리 봐도 그 요구가 부당해 보인다면, 내 안에 분노가 쌓이게 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의무감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그 상대를 좋아할 수가 없어. (170p)

 

독자들도 그것을 읽고 즐거우려면 그 글 안에는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이 되거나, 마음에 스미는, 혹은 투명한 깨우침을 주는 인생의 교훈 같은 것을 선물처럼 숨겨두어야 한다고 봐. 그 교훈의 내용과 전달방식이 창의적이고 은근하고 세련될수록 그 에세이의 매력은 더 클 것이고. (195p)

 

여태 해왔던 자신의 일을 돌연 그만두고 다른 것에 도전하는 것만 용기가 아니라, 여태 해오던 일을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변함없이 지속하기 우해 자신의 일상을 재조정하는 것도 정말 큰 결단의 태도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자신의 현실적인 한계를 직시하는 용기인 것이죠. (202p)

 

내 인생이 펼쳐지는 토양을 개간하기 위해서 내 시간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가를 따져볼 때, 원고 한 장에 급급하고 노래 한 곡을 땀땀이 메꿔나가는 것이 요조라는 땅에는 가장 적절한 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233p)

 

우정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공유하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성립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너는 지난번에 우리가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성향'을 공유한다고 짚었지. 그 동질성은 우리 마음 혹은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연결된 것이라 참 다행이다 싶었어. 만약 우리가 얕은 곳에서 어떤 것을 공유한다면-가령 특정인물을 같이 미워하거나, 어떤 불평불만을 나누거나, 일시적인 일로 엮여 있다거나-그 해당조건이 사라질 때 그 관계도 어색해지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 (269p)

 

 한편 '감정 착취'도 자칫 우정으로 오해하기 쉬워. 가령 내가 불행해졌을 때, 그 불행의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사람들.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니까 나는 무척 고마워하며 우리 둘은 금세 친밀해지지만, 실은 그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행복과 존재이유를 확인하는 사람이었지. (2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