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일기 by.작가1

2020. 4. 22. 17:02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탈코일기 by.작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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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by.수신지

나는 고집 세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내 생각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가정에서 남동생과 크게 다른 대우를 받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도 여중, 여고를 다니며 직접적으로 남자와 비교당하는 일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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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줄여서 탈코)이란,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과 같은 것들을 벗어던지자는 운동이다.

 화장 하기, 머리 기르기 같은 남자들이 굳이 하지 않는 것을 안하는 것이 실천사례가 된다. 

 

 ▶왜 그런 행동이 의미가 있는가.

 

 '사회적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여성성'은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성으로서의 모습이다.  

 그 기준은 남성들의 시선에서 세워졌고, 성적대상화된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왜 그게 문제가 되는가. 성적대상화 된 모습이어도 여성 스스로 예쁘다고 느끼면서 만족할 수도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남성적 시선으로 자신을 타자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 노예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성적대상화란,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여자=보지, 로만 바라보는 태도다.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성적 욕구를 풀 도구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수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통받는다.

 끔찍하게도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최근에 투블럭을 했다.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여자라서, 지금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머리가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렇다면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은 순간 바로 투블럭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먼저 단발에서 숏컷으로 넘어가는 단계를 거쳤다.

숏컷에서 투블럭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단발에서 숏컷으로 넘어가는 게 더 어려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의 그 긴장감과 막연한 걱정들. 

잘 안 어울리고 이상하면 어떡하지, 란 걱정이 가장 컸다.

머리가 잘 어울리고 예뻤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 

내 마음에는 여전히 벗어던져야 할 코르셋이 있었던 거다. 

우리는 예쁠 필요가 없다.

 

숏컷을 하고 나서 시간이 흘렀다. 나는 펌을 하러 갔다.

코로나로 인한 방콕 생활로 머리가 거지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머리가 탈색모여서 펌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내 마음은 이미 내 머리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것으로 세팅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럼 투블럭으로 잘라주세요.

그렇게 생각보다 간단하게, 첫 투블럭을 하게 되었다.

 

머리가 뭉텅이로 서걱 잘려나가는 느낌, 

바리깡이 목덜미와 뒤통수를 위잉-지나가는 느낌. 

낯설고 두근두근했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넌 여자니까 하면 안 돼' 라고 하는 것에 '왜 안 돼?' 라고 되물었다.

'여자같지 않잖아'

'여자같은게 뭔데?'

'예쁘고 아름다운 거. 찰랑거리는 긴 머리,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길고 얇은 다리, 커다랗고 둥근 눈, 붉은 입술.' 

'난 그런 것들로 정의되고 싶지 않아.'

 

머리가 잘려나감과 동시에 느꼈던 해방감이었다.

머리카락, 이게 뭐라고 그렇게 전전긍긍했을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 하긴 했지만 한 순간에 페미니즘에 풍덩, 몸을 던질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상을 살아가며 페미니즘 이슈를 틈날 때 하나씩 고민해보고 있다.

나의 속도에 맞춰서 내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라는 건 여성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모든 부당한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내 삶의 주체성을 되찾고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길! 

 

 

마음에 담는 문장들


-왜 '예쁘다'는 단어는 여자만의 수식어가 되야 했을까요?

똑같이 예쁜 것을 좋아하는데 왜 남자는 예쁜 것을 '감상하는 자'가 된 반면, 여자는 직접 '예쁜 것'이 되야 했을까요? 

 

-노예가 노예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더 빛나는지, 더 무거운지.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아미리 바라카

 

-여자의 최고 의무를 '예뻐지는 것'이라 규정해서 여자들이 스스로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게 만들고, 자신이 대상화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든...이 사회가, 못생길 수 있는 자유와 꾸미지 않을 자유를 앗아가 버린 사회가, 그리고 침묵 중이었던 권력자들이 잘못이다.

 

-중국의 전족도 자기만족이었고, 히잡도 패션이었다. 그렇게 코르셋에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코르셋에 투자했을까.

 

-우리에겐 꾸밀 자유'만' 있다. 꾸미지 않고 '못생긴' 여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너도 알고 있을 거다.

 

-그 '예쁨'이 권력이라고? 권력이 아니라 예쁜 먹이일 따름이지. 권력은 '예쁨'이 아니라 강한 이빨이다. 

 

-여자가 배란기 때 나타나는 신체적 특징. 머릿결이 좋아지고, 볼이 붉어지며, 가슴이 부풀고, 입술이 붉어지고 도톰해진다. 우리가 하는 치장의 목적은 여자를 배란기 때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미의 기준은 사람을 폭력에 취약해지게 만들고 독립성을 빼앗아간다. 

 

-멀리해야 할 건 '사회적 여성성'이지 '여성' 그 자체가 아니다. 내 몸에 달려있는 가슴과 포궁을 혐오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