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지지 않는 마음(2021, 양다솔)

2022. 3. 30. 17:09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책을 읽다

 

가난해지지않는마음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양다솔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정성들인 밥상을 차리는 것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위해 번거로운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것

나를 지키기 위해 때로 명확하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결코 가난해질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생활밀착 에세이

 

마음에 담는 문장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기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살고 싶은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풍요가 우리 집에는 있었다. 나는 다음 달, 다음 해도 아닌, 당장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침이면 일어나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한강을 달린 후 집 안 가득 들어온 햇빛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매일 나를 위한 끼니를 정성스럽게 차렸다. 나는 행주에서 찌든 냄새가 나기 전에 팔팔 삶아낼 줄 알았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창문마다 야무지게 뽁뽁이를 바를 줄 알았으며, 식물의 뿌리가 화분 아래로 나올 때쯤 새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줄 줄 알았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의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냉장고는 제철에 맞는 먹을거리로 가득했으며, 살림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들이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참 잘 산다"고 할 만했다. 마치 그곳이 나의 우주인 듯 그 안에서 완벽히 순환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만은 완전히 바보가 되었다. 진로와 직업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토록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열심인 자가 동시에 이토록 대책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빨래 한 장 개본 적 없고 밥상 한번 차려본 적 없어도 자신의 삶을 멀리 내다보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뻗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한없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현실이 어느 날이라도 닥쳐와 나의 하루를 빼앗아갈 것 같았다. 마치 녹아버릴 눈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44-45p)

 

나는 어쩌면 평생 한 쪽 면밖에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언제나 존재함을.

겸허하게 되뇌인다.

 

+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뜻밖의 선물

다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