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책임. But 책임보단 공감

2020. 3. 26. 11:19세번째 서랍: 일상 이야기


나는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별 거 아닌 한 문장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서 당황스러운 적도 왕왕 있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에는 우리 반 아이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님의 ‘아이도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어요.’라는 한 마디에 눈물이 돌았다.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내색하지 않으려 하며 스스로도 ‘눈물샘이 속수무책으로 열리는 느낌’에 당혹스러웠다. 사실 머리로 생각하면 ‘그 정도로’ 반응할 관계나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반면,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시부모님이 아프신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 차가운 마음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보며 스스로도 ‘난 왜 이러지? 이중인격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S와 이야기하며 아, 내가 이중인격이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시부모님이 아프신 일이 책임지기에 너무 버겁게 느껴진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친구의 이야기에 쉽게 마음을 열고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우리 사이에 ‘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을 안전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가 아프다고 해서 내가 친구를 ‘당연하게’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우리 사이에 그 정도의 숭고한 우정이 생긴다면 좋겠다. 그건 ‘주어진 의무의 관계’로서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과 가꿈의 시간’으로 가능할 테니 더 잘 가꾸어 나가고 싶고.)     

 

내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펑펑 울 수 있는 건

내가 운다고 해서 '어떠한 책임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물론, 마음이 동하면 어떠한 행동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 행동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거고, 부담으로 느껴지기보단 기꺼이 지는 책임이 된다.     


나는 시부모님이 아프신 일을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며 

남편이나 시가 사람들이나 나에게 어떠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에 공감부터 시작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친구가 내게 자신의 힘듦을 털어놓을 때 

그걸 내가 전부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그걸 전부 해결해줄 수도 없는 것처럼.

시부모님의 문제도 그렇게 크게 부풀리지 않고 생각하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중요한 건 부모님이 아프셔서 걱정되고 슬픈 남편의 마음을 알아봐 주고 위로해주는 일이었을 텐데...(실패함)     

 

나는 스스로를 몇몇의 인상적인 경험들로 인해 생긴 틀(경험이 강렬하긴 했다...)에 가두어 버리고 더 이상의 새로운 시각이나, 틀을 만들려는 의지 없이 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내가 가진 틀이 어긋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고, 새롭게 칠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경험이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공감에는 책임이 따라오지만, 그 책임이 무서워서 공감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책임을 버리고 공감을 택하는 게 우리가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191004-191028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