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대하는 마음

2020. 3. 26. 11:27세번째 서랍: 일상 이야기

한 사람에 대해 그 사람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전하는 사람에 따른 다른 경험, 다른 느낌, 다른 판단이 전해진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경험한 사람을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런 면도 있는 사람이구나, 를 마음 한 켠에 기록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이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기에. 그 사람에 대한 종합평가를 뒤집어 버리진 않으려 한다. 

그리고 더욱 그 사람의 다양한 결을 알아가고자 한다.

 

학교에서 I 부장님과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그분은 메신저로 용건을 전달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오히려 전화보다는 메신저로 하는 게 서로에게 더 정확하고 편리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통이 몇 번 오간 후 그분이 나를 불러 메신저로 하는 게 불편하다고, 전화로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 몰랐다, 앞으로는 전화로 말씀드리겠다고 하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그분에 대해 너무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마음의 거리가 생겼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그분은 ‘연장자는 우대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시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불편함을 더했다. 

 

몇 개월 후, 새 학기가 시작되며 나는 그 분과 같은 동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그 분과 같은 동학년이었던 H 선생님께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H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그분은 참 재밌는 분이시죠.’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재미있다니, 무슨 말이지? 당황스러웠다. 내 이미지 속 그분은 경직되고 딱딱한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인데..?

 

그렇게 시작된 그 분과의 동학년 생활. 그 속에서 나는 그분에게 내가 작년에 경험했던 면들도 있었지만 H 선생님이 왜 ‘재미있다’라고 했는지 알 수 있는 새로운 면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하셨던 거 같은데 교감선생님의 불합리한 방침에는 감히(?) 반기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시는 강직한 면이 있으셨다. (교감선생님이 여자라서 그런 걸까..?)

그분의 신념체계 안에서는 합리성을 추구하시는 분이시라 일에 있어서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남에게 미루는 건 없었다. 선배에 대한 예의를 보다 중요시하셨지만 그렇다고 후배에 대한 예의를 밥 말아먹은 분은 아니었다. 교직 사회 안에서 남자 교사가 육아를 위해 조퇴를 하는 것도, 부장교사를 하다 올해는 안 한다고 하는 것도 나름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내 교실에 찾아와 스스럼없이 수다를 떠시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꼰대 교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그 수다의 내용 중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내용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 수다의 시간에서 중요했던 건 내용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아주 작은 친밀감의 탄생이었다. 

 

놀라워라, 

그분은 작년의 그 분과 동일인물이 맞는데 그분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작년과는 꽤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관계에는 흘러가는 시간과 쌓여가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아는 당신이 당신의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나는 당신에 대해 더 다채롭고 더 깊게 알고 싶다고. 

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듯이 당신도 변해가는 존재이기에 과거의 당신이 아닌 오늘의 당신을 보고 싶다고. 

그 후에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19.07.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