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2020. 3. 26. 11:32세번째 서랍: 일상 이야기

(좋아 보이진 않아도 공감할 수는 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은 일하러 가는 시간이 좋다. 

그때 나는 늦잠을 실컷 자는 거야.

알람 소리에 깼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울리는 알림 소리에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는 것 말고. 

내가 원하는 때에 어떤 방해도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거야.

그리고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고 웹서핑을 하며 오늘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구경을 해. 

그렇게 침대 속에서 한두 시간은 금방 보내버릴 수 있지. 

핸드폰에서 볼 게 떨어지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절반쯤은 직장으로 떠나 

반쯤은 비어버린 아파트에서 

그래서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오전 11시의 시간. 

 

주방으로 나와 물 한 잔을 마시고 몸에 ‘정신’을 불어넣지. 

그리고 간단하게 아점을 먹어. 

바나나는 간편하면서도 달고 포만감을 줘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아점 음식이야. 

빵을 곁들이거나, 아니면 조금 귀찮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소박하게 된장국에 밥을 먹어. 

그리고 시원하고 달달하거나 상큼한 종류의 과일로 입가심을 해주면 좋지. 키위나 복숭아 같은 것들 말이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거실의 이케아 흔들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몸을 뉘이고 살랑살랑 의자를 흔들다 멈췄다가 하며 베란다 창 밖을 바라봐. 

우리 집 거실은 화이트 톤과 식물들의 초록 초록함이 어우러져 있어서 작지만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이야.  

소박한 행복, 일상의 여유로움, 과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는 곳이지.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곳이야. 

 

그렇게 멍 때리다 다시 핸드폰을 보기도 해. 그날 기분에 어울리는 곡을 찾아 유튜브에서 재생해.

음악을 좋아하지만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정성스레 모을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감성 있게’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를 조금 손쉽게 듣곤 하지.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핸드폰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베란다에 둔 우리 반려식물들에게 언제 물을 줬더라, 곱씹어 보기도 하지.

물을 줄 때가 얼추 된 것 같으면 물을 주는데 항상 잘 못 돌봐줘서 미안한 마음이 든 채로 물을 주곤 해. 

그리고 베란다에 나간 김에 빨래통도 살짝 들여다봐. 빨랫감이 어느 정도 쌓여있나? 그리고 널어둔 빨래가 있다면 잘 말랐나? 

빨래통이 꽉 차서 빨랫감이 입구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으면 빨래를 돌려. 

널어둔 빨래가 빳빳하게 잘 말랐다면 빨래 바구니에 담아서 개지.

 

빨래를 갤 때 하늘하늘 얇게 흘러내리는 남편의 메리야스를 어떻게 개냐에 따라 내 시간의 여유를 잴 수 있어. 이렇게 여유가 많은 날엔 뒤집어져 있는 메리야스를 앞으로 다시 뒤집고 각이 잘 안 잡히지만 최대한 예쁜 모양이 나올 수 있도록 접어줄 수 있지. 바쁜 날엔? 그냥 대충 접어서 말아서 넣어놓지. 그럼 남편도 바쁜 날엔 메리야스의 안쪽 박음질 선이 밖으로 나온 채로 입고 있더라고. 그럼 ‘거꾸로 입은 것도 몰랐대요, 바보래요.’라고 놀리는 거지. 

 

빨래 일거리가 없다면 의자에 앉은 채로 옆에 있는 쿠션을 집어서 무릎 위에 얹어. 그 위에 읽다 만 책을 올려놓고 잠시 독서의 시간을 갖는 거지. 그러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highlight’라는 앱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 간직해. (갑자기 앱이 사라져서 상실감이 컸음. 내가 저장해 둔 글들ㅠ)

 

그리고 불현듯 글을 쓰고 싶다- 지금 이 마음을, 이 생각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탁자에 앉아 글을 쓰게 되는 거야. 사실 예전 같으면 나중으로 미뤘겠지만 그렇게 나중으로 미뤘다가 영영 사라져 버린 글들이 많아서 이제는 이 순간이 아니면 놓치게 될 거란 마음으로 조금 절박하게 타자를 쳐. 

 

아, 한 가지 빼먹을 뻔한 게 떠올랐어. 

향이 특별한 뜨끈한 차 한 잔! 

그거면 어느 힙-한 카페 부럽지 않은 나만의 홈 카페가 완성되는 거야.

 

매일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좋은 걸까?

 

(19.07.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