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오기가미 나오코(2017)

2020. 11. 5. 21:50네번째 서랍: 문화 이야기/영화를 보다

가족이 아니어도 진심으로 엮일 수 있다.

 

이 영화는 무책임한 엄마로 인해 어느 날 삼촌과 삼촌의 연인인 트랜스젠더 린코와 함께 살게 된 토모의 이야기이다. 트랜스젠더라는 당황스럽고 낯선 존재였던 린코. 린코는 천천히 토모에게 다가간다. 사려깊은 린코는 토모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토모를 위해 준비한 정성스러운 도시락, 맛있는 저녁, 따듯한 품, 돌봄, 이야기를 듣는 귀. 토모는 그런 린코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린코와 진심으로 엮인 사이가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다.

 

 

친절의 가면을 쓴 비하

 

 

편견과 혐오로 입히는 상처

 

그러나 주변에서는 린코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해로운 존재'라 넘겨짚고, 토모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성급한 친절을 부린다. 그 사실은 오히려 린코와 토모에게 상처가 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린코와 토모와 삼촌이 이룬 가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한다. '너희들은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야.' '너희들은 정상적인 가족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안정성, 사랑, 도움, 성장을 이룰 수 없어.'라고. 하지만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보여지는 셋의 관계는 겉으로 보여지는 '생물학적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이루어졌지만 서로를 잘 모르고, 서로를 상처입히는 관계보다 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영화에선 성 정체성과 관련된 두 가지 이슈가 나온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다. 

남학생들 틈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리고 여자와 같은 가슴을 갖길 원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사실 여성이라고 생각하게 된 트랜스젠더 린코.

남자인 선배를 좋아하는 토모의 친구인 동성애자 남학생.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성소수자로서 두 사람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그려진다. 

 

가짜 가슴을 만들어서 브래지어와 선물하는 린코의 어머니 
자살을 시도하는 토모의 친구

 

린코의 부모와 남학생의 부모의 모습도 대비해서 보여준다. 린코의 부모는 린코를 그대로 인정해주며 린코에게 브래지어를 선물하고 가슴뽕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남학생의 부모는 아이가 남자선배에게 쓴 러브레터를 발견하고 찢어버린다. 그 결과 린코는 성인이 된 이후 지금도 부모와 함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남학생은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성별 정체성과 성 고정관념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성소수자를 대하는 우리의 편견과 혐오에 대한 성찰, 부모와 어른으로서의 태도 등은 동의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한 가지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다. 린코는 꼭 트랜스젠더가 되야만 했을까?

 

성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한다. Sex(섹스, 생물학적 성)과 Gender(젠더, 정신적·사회적 성)다.

섹스는 염색체(XX,XY), 생식기, 신체적 차이로 나뉘는 남성과 여성을 뜻한다.  

젠더는 사회에서 규정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의미한다. 

시스젠더는 사회적 성과 생물학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뜻하고,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성이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신체를 가졌지만 자신을 남성이라고 생각해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거나(FTM:Female to Man), 남성의 신체를 가졌지만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MTF:Male to Female)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영화에 나온 린코는 MTF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어떤 성별이라고 여겨지느냐에 따라 신체적 성까지 결정되야 하는 걸까?

린코가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남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한 불쾌감과 자신의 가슴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

 

유도를 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린코

 

유도하며 남학생의 몸이 닿는 게 불편하고, 그 이유가 단순히 타인의 몸이 닿는 게 불편한 거라면 그건 성별을 떠난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신체 노출을 꺼리는 사람이 있고,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라 '내가 상대방과 정신적 성별이 다르다고 느껴서' 불편한 거라면, 내가 상대와 다른 정신적 성별이라는 건 어떻게 느끼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생물학적인 차이가 아닌 '여성의 마음, 여성의 정신'이란 건 무엇일까. 여성인 나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남성을 사랑하면 여성인 걸까? 동성애의 가능성도 생각하면 남자를 좋아한다고 꼭 여성은 아니지 않나.

 

2)여성과 같은 가슴이 갖고 싶은 마음이 듦.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질감.

 

어린 시절의 린코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나서 따라오는 반응이다. (따라서 여전히 물음표가 이어진다.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뭔가.) 여성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자신의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몸이 혐오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성이 가진 신체적 특징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를 일치시키고픈 마음이 들 것이다. 또한 여성의 신체적인 특징까지 갖춰야 사회적으로도 보다 쉽게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저 여성의 신체적인 몸이 내 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여성이 되고 싶은 거라면... 그건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탐하는 변태가 아닐지.

 

3)다소곳하고 정서적이며 배려심 많고 다정한 성격

 

토모를 다정하게 위로하는 린코 
다소곳한 모습이 몸에 밴 린코

 

여성들은 다소곳해야해.

꾸미는 걸 좋아하고 치마를 좋아해.

여성들은 감정적이야.

여성들은 배려심이 많고 다정해.

 

4)요리와 돌봄을 잘함

 

요리를 잘하는 린코 
직업이 요양보호사인 린코

 

여성들은 요리를 좋아하고 잘해.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걸 좋아하고 잘해.

여성들은 아이들을 좋아해.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유는 지극히 성고정관념에 물든 생각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특성을 지니지 않은 수많은 (나포함)여자들은 여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며 

이런 특성을 지닌 수많은 남자들은 여자가 되야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한다면

 

 

린코를 사랑하게 된 건 린코가 여자여서가 아니었다.

 

린코에게 필요했던 건 트랜스젠더가 되는 게 아니라, 성고정관념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받는 게 아니었을까?

삼촌이 린코를 사랑하는데 린코의 성별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세상에 모든 사람이 삼촌처럼 린코를 바라봐 줄 수 있었다면, 린코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성별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