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육 수업 실천 사례를 시작하며

2020. 6. 18. 16:05두번째 서랍: 페미니스트 교사/현장, 실천이야기

성평등 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2019년이다. 

페미니즘 이슈와 함께 교육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혼자서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와 같은 책을 읽기도 했고,

혼자보단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페미니스트 교사 모임 '나다움'을 시작했다.

교육청 성인권강사단에 지원해서 동료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인지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다수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면 심장이 쫄깃해지곤 한다. 

그런 내가 이렇게 성향에 안맞는 일을 하게 된 건, 그만큼 이런 일들이 학교 현장에 꼭 필요하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N번방의 피의자 221명 중 65명. 30%에 해당하는 사람이 10대였다. ▼기사참고

그 외에도 수많은 유사 성범죄에 10대가 이름을 올리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만났었던 아이들이었다.

어떤 일도 원인 없이 일어나진 않는다. 

이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성착취 영상을 소비하고 성범죄자가 된 것은 분명 아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게 당연한 사회.

여성 혐오가 넘치는 욕, 게임, 문화들.

어디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린아이들도 쉽게 성착취물에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

인격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성범죄자들에게 내려지는 약한 형량이 주는 성범죄에 대한 시그널. '괜찮아. 빠져나갈 수 있어.'

아이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것들을 스펀지같이 흡수하며 자라났을 뿐이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성평등 수업 기록을 시작한다.

시작은 책이나 연수를 통해 다른 분들이 먼저 열어주신 길을 따라가는 것부터 하려 한다.

('예민함을 가르칩니다:교실을 바꾸는 열두 가지 젠더 수업'/ '교실 속 젠더 수업: 쉽게 배워 바로 쓰는 성 평등 교육' 창비교육연수원 연수 등)

앞서 험난한 돌밭길을 일구어 주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나의 기록이 같은 고민을 하는 교사들이 성평등 수업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꼭 교사가 아니라도 이런 고민들을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성평등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다른 가능성을 택할 수 있기를. 

성별이 서로에게 무기가 되지 않기를.

성착취물을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범죄자가 되지 않기를.

성별에 얽매여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받지 않고 살아가기를.

이 아이들이 자라서 조금은 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