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타자에게로

2020. 11. 3. 12:31첫번째 서랍: 나의 믿음/묵상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노예 감독들을 두었습니다. 노예 감독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로 일을 시켜서, 파라오를 위해 비돔과 라암셋 성을 짓게 했습니다. 그 성은 이집트 사람들이 물건을 쌓아 둘 수 있는 창고 성이었습니다.(출애굽기 1:11)'

 

'히브리 여자들이 아기 낳는 것을 도와 주다가 분만대 위에서 잘 살펴보고 만약 아기가 딸이면, 그 아기를 살려 주고 아들이면 죽여 버려라! (출애굽기 1:16)'


묵상 도움: 이정도 목사님

 

건국 신화를 살펴보면 항상 특별한 설화가 있다.

신의 아들 환웅과 인간으로 변한 곰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세운 고조선.

알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활을 잘 쏘았다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알에서 태어나는 걸 특히 좋아했...)

 

그런데 이스라엘의 건국 신화는 다른 의미로 남다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의 노예였던 민족이었다.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태어나는 남자 갓난아이는 다 죽여버리라고 말하던 시대였다.이스라엘의 남자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다.

 

노예였고, 언제든 죽을 운명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으로 인해 노예에서 해방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원래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너희가 이방인이고 나그네였단 사실을 잊지 말라고.

너희와 같은 처지인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너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고. 

너희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 2:15)

 

우리 또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자들과 같다.

이를 보고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내 삶을 살아가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해방시켜주셨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노예였음을 기억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노예였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노예였고, 

오늘날 우리는 일생에 매인 노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삶이 내 힘과 계획으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맞닿아 있는 것이 삶임을.

400년 간 노예생활을 하는 삶이었다가 어느 날 불현듯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400년 간 하나님의 침묵의 시기 뒤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내 삶도 하나님의 큰 계획 아래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임을.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까, 내 삶을 균형있게 살까 고민했었다. 

하나님께선 그런 내게 요새 자꾸 나 자신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 주변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지금 너의 삶에 만족하며 너의 본래 정체성을 잃지 말라고.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늘 타자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인 거라고. 

특히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 약한 자들의 편이 되어주고 그들을 도와야 하는 거라고. 

그들은 사실 타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