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태국-평화와 여유가 깃들었던 사랑스러운 섬 꼬창(1)

2020. 3. 24. 22:16창문 밖 풍경: 여행/해외 여행

세계엔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닿았음에도 왠지 그곳이 더 나의 고향 같은 편안함을 주는 나라가 있다. (물론 그것이 생활이 아닌 여행지라는 이점이 있다는 건 감안하고. 한국에서도 여행 갔을 때처럼 매 끼 맛있는 거만 먹으러 다니고, 매일 어떻게 재미있게 놀 궁리만 하고, 아이쇼핑하다 득템 하는 일상이 펼쳐진다면 그곳은 과연 헬조선이라 할 수 있겠는가. 뭐..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에겐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나에게 그 나라는 지금까지는 두 말할 것 없이 '태국'이다. 태국말이라곤 사와디 카- 컵쿤카- 밖에 모르는 나이지만(좋아하는 거 맞니) 나는 태국의 화창한 분위기(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자유로움과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 태국의 날씨(맑고 화창한 하늘. 그렇다 나는 태국을 건기에만 갔다(..)), 태국의 음식(냉동 망고와는 차원이 다른 달달한 생망고, 그냥 거리에서 먹어도 맛있는 팟타이, 밥 한 공기 뚝딱 뿌빳뽕커리 등.. 게다가 한국 물가와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함. 맛있는데 싸기까지 하면 말 다했지), 태국의 사람들(태국 사람들이라고 나쁜 사람 없겠냐만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좋은 분위기와 친절을 보이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훗날 개인적으로 큰 도움을 받기까지 함.), 조곤조곤하게 들리는 부드러운 태국말까지... 나는 속수무책으로 태국에 빠져들었다.

 

꼬창의 흔한 해변 풍경 ⓒ정오의달

태국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수많은 유명 관광지, 휴양지들이 있다. 방콕, 파타야, 꼬사무이, 끄라비, 푸껫, 치앙마이 등등.. 그중에서도 나와 친구 K가 택한 여행지는 꼬창(Koh chang)이라는 파타야에 비하면 생소한 섬이었다. 태국에서 유명한 Chang이라는 맥주가 있다. Chang은 태국말로 '코끼리'라는 뜻으로 그래서 창 맥주에는 코끼리 그림이 그려져 있다. 꼬창의 꼬는 '섬'이란 뜻으로 꼬창은 즉 '코끼리 섬'이란 뜻이 된다. 꼬창이 코끼리 섬이 된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섬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꼬창은 한국인들보단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조용한 해변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이번 여행은 일정과 사람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자연을 누리며 게으름뱅이가 되어보자! 

 


 

제주에어에서 오후 8시쯤 비행기를 타고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다. 우리는 수완나품 공항에서 노숙을 결심하였기에 내리자마자 드넓고 현대적인 수완나품 공항의 지하를 헤매며 우리의 첫날밤을 책임져줄 안전하고 조용한 잠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간 해외 자유여행이었는데 노숙으로 시작하는 우리의 패기 넘침은 지금도 웃음이 나는 추억이다. 12시가 넘어 모든 가게들은 다 셔터를 내리고 고요한 공항 로비 어딘가 계단 밑쯤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바닥엔 침낭을 깔고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몸보다 소중한(?) 캐리어님을 안쪽에 고이 모신채 바리케이드를 쳤다. 누구든 이 캐리어를 건들면 주옥 되는 것이다..라는 마인드로. 그렇기에 태국에서의 첫날 밤은 깊이 잠들지 못한 채 설핏 흘러갔다. 게다가 K는 이름 모를 벌레에 물리기까지 하여 태국에 오자마자 빨간 훈장을 얻었다. 어느덧 새벽이 오고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출발하는 꼬창행 버스를 타러 갔다. 티켓을 제대로 끊을 것인가가 최대의 미션이었는데 다행히 큰 문제없이 버스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버스도 쾌적했고 우리는 드디어 공항 밖 눈부신 진짜 태국으로 떠났다. 

 

해외에서 만나는 우리 동포의 얼굴은 어찌 그리 반가웠던지.. 그것이 불행의 시작   ⓒ정오의달

 

가는 길에 도로변 간이 휴게소에 들렀다. 거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태국 돈을 사용해서 물건을 구매하게 되었다. 아직 환율 환산이 빠르지 않고 물가가 와 닿지 않던 여행 초반의 그 시기- 태국 여행자 Lv.1의 쪼렙 시기에 그 휴게소는 덤터기와 윽박지름을 장착한 Lv20. 마녀가 버티고 있는 던전이었음을 모르고 말이다. 해외에 가면 가게에서 과자봉지 구경하는 것도 꿀잼이라 이것저것 신기해하며 구경하던 중 발견한 낯익은 얼굴!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아닌가. 두 손에 든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특산품 김이 아니던가! 한국의 김을 모티브로 한 김 과자에 우리는 애국정신을 느끼며 홀린 듯 그 과자를 집어 들었다. 이건 꼭 맛봐야 해..! 그리고 몇 가지를 더 골라 계산을 하려는데 Lv.20의 덤터기 대마왕 아주머니가 부른 가격이 몇 백 바트를 넘었더랬다. 일단 돈을 건네고 나서 가격을 한국돈으로 환산해 보는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과자 가격치곤 너무 비싼데?!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다급하게 결제 취소를 요청했으나.. 아주머니는 우리 같은 풋내기들에게 결코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단호하게 돌아온 대답은 절대 No. 우리는 그렇게 바가지를 쓰고 씁쓸하게 과자를 삼켰다. 하지만 그래도 과자는 맛있었다. 김은 진리다. 액땜했다 생각하고 앞으로는 여행의 즐거움에 취해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며 나와 K는 비장하게 의지를 다졌다. 

 


 

동남아에서 가능한 사치 ⓒ정오의달

 

버스에서 내려 다시 배를 타고 우리는 드디어 꼬창에 도착했다. 첫 번째 숙소는 어두운 고동색의 나무톤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숙소도 깔끔하고 아담한 발코니 밖으로 보이는 잘 가꿔진 야자수 정원이 내가 동남아시아에 와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원을 지나면 바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가 이런 고급진 것을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격에 겨웠다. 숙소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가자 곧 선베드에 평화롭게 누워서 책을 읽거나 태닝을 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양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맞긴 맞구나. 서양인들의 여유로움과 대비되게 우리는 첫 자유여행의 설렘과 흥분을 담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해변에서 사진 찍느라 포즈를 취하는 건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럽고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찍었던 사진이 있기에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꽤나 생생하게 꺼내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해질녘 꼬창의 해변 ⓒ정오의달

 

늦은 오후에 도착했기에 조금 뒤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바다는 내리쬐는 황금빛 햇살에 부서져 내렸다.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전 날 밤부터 시작된 여행이 노숙과 긴 이동을 거친 고된 하루였지만 이 순간의 장면 만으로도 모든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섬이구나, 꼬창은. 

 


 

해변가 노천식당에서 Chang 한 잔으로 낭만적인 밤을 ⓒ정오의달

 

 

이제 저녁도 먹고 꼬창의 밤을 즐길 준비를 해야 할 시간! 나는 숙소에 돌아와 외국에서만 소화 가능한 버건디색 원피스를 입고 귀에 샹들리에를 단 것 같은 화려한 귀걸이와 손 한 마디 전체를 감싸는 볼드한 반지를 끼고(패션 테러리스트 아닙니다.) 꼬창의 밤을 즐기러 출동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해변은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해주었다. 해변가 노천식당에서 어두워 보이지는 않지만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낭만적인 저녁 식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있는 노점에서 로띠를 사 먹으며 야식까지 쏠쏠히 챙겼다. 마지막으로 숙소에서 자그맣고 귀여운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긴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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