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태국-평화와 여유가 깃들었던 사랑스러운 섬 꼬창(2)

2020. 3. 24. 22:19창문 밖 풍경: 여행/해외 여행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게 해주는 조식 ⓒ정오의달

 

일상의 아침은 고막을 때리는 날카로운 알람 소리로 시작된다. 알람 소리에 눈살부터 찌푸려 지기 십상인 아침. 떨어지지 않는 잠을 겨우겨우 떼어내며 일어나 씻고, 아침은 간단하게 먹거나 건너뛰기 일쑤다. 그런 나에게 알람 소리가 울리지 않는 고요한 공기, 느긋하게 일어나 창 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시간, 다채로운 메뉴가 입을 즐겁게 해주는 식사까지 갖춰진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다. 조식과 함께 오늘 하루도 즐거운 일들이 가득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하루를 시작했다. 

 

정오의 바다 ⓒ정오의달

 

아침을 먹고 나서 우리는 또다시 바다로 나갔다. 오후의 바다와 정오의 바다는 같은 듯 달랐다. 정오의 바다는 한없이 맑고 투명했다. 바다의 꺼풀은 얇게 얇게 벗겨져내려 내 발치로 가까이 다가와 어느새 스러졌다. 

 


 

두 번째 숙소 근처의 풍경 ⓒ정오의달

 

첫인상부터 모든 게 마음에 들었던 첫 번째 숙소를 떠나 해변을 옮겨 조금 저렴한 두 번째 숙소로 이동을 했다. 두 번째 숙소는 조금 덜 정돈되었지만 그래서인지 나무도 풍경도 더 자유롭게 무럭무럭 자라 있는 것 같았다. 그 자유로운 흐트러짐이 마음에도 한줄기 싱그러운 바람을 넣어주었다. 

 


 

우리는 화사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동네 상점 구경에 나섰다. 저녁만 되면 화사한 원피스로 갈아입는 우리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매일 밤 파티에 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건 꽤 신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왕자님의 선택 같은 것도 필요 없었으니까. 

 

친절한 점원 덕분에 폭풍쇼핑을 하게 된 작은 소품가게 ⓒ정오의달

 

 길을 따라 작게 들어선 가게와 노점들을 구경하며 소박한 동네 거리를 걸었다. 상점이 모여 있는 곳치곤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문이 곧 닫을 것만 같아 서둘러 물건을 사야 할 것만 같았다. 그중에 한 곳에서는 그 당시 한국에선 잘 찾아볼 수 없었던 지끈으로 만든 공 모양 조명 전구를 샀다. 나중에 밝은 데서 보니 실제 지끈 색이 생각보다 원색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밤은 사람도 물건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또 다른 한 곳에서는 친절한 점원 덕분에 폭풍쇼핑을 했다. 언어의 장벽은 쇼핑 앞에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점원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주었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이 곳에서 우연히 만난 게이 할아버지 커플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어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다 같이 기념사진까지 찍게 되었는데 사진을 찍던 중 바지 지퍼를 내리고 내 뒤에 서있었다는 K의 이야기를 듣고 기겁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K는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며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한 것에 감사해야 했지만 다시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예전에 한 번은 이태원 근처 지하철에서 만난 외국인이 나는 몰랐던 성적인 제스처의 신체접촉을 했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나중에 이야기해줘서 그때도 뒤늦게 불쾌감과 수치감이 들었던 적이 있다. 한국인이어도 물론 낯선 사람에게 나의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되는 일이고 사실 그런 표현을 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아저씨 둘을 피해서 자리를 멀찍이 옮긴 적이 있는데 참고 피한 내 행동에도 저거 자리 피한 거냐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때 참은 건 난데 왜 민폐를 끼친 그들이 더 불쾌해하는 건지. 왜 내가 그들이 해코지할까 봐 두려워해야 하는 건지. 속상하고 분했던 순간들. 그런데 상대가 외국인이 되면 말까지 통하지 않으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거기다 장소도 외국이라면.. 그저 이런 일을 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그게 정말 최선인 걸까. 그게 최선이 되는 상황에 조금 슬퍼진다. 

 

케밥의 맛에 눈뜨게 해 준 인생케밥 ⓒ정오의달

 

불쾌한 일을 뒤로하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에피타이저로 길거리에서 파는 케밥을 먹었다. 이때 먹었던 케밥이 너무 맛있어서 나는 그 이후로도 여행지에서 케밥을 파는 곳이 있으면 이때의 케밥을 떠올리며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무엇이든 추억과 버무려진 맛을 뛰어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마 다시 이 곳에 가서 먹는다고 해도 그때의 맛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인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래서 소중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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