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나님께로

2020. 6. 22. 14:58첫번째 서랍: 나의 믿음/묵상

툭, 끊어졌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나 보다.

도망치고, 외면하다 보니 내면은 황폐해져 갔다.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지' 

명령하시는 분으로 느껴졌다.

'더 사랑해야지.'

'더 희생해야지.'

사랑하고 희생하는 거 옳은 일이잖아?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일이잖아? 

그러니 당연해. 

 

그리고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완주해야 할 길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데

나는 아직도 시작점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서 힘들었다. 

 

힘들다 보니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졌다.

난 못해요, 

더 이상 이런 고민 하고 싶지 않아요, 

나도 즐겁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림을 그렸고 

친구들을 만났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책과 영상을 봤다. 

정말 즐거웠다. 

 

정말 즐거웠기에

하나님은 점점 내 마음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문득

나,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앙이란 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 거지.

마음의 바닥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선연히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가

성경책을 폈다.

 

예레미야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내 모습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여기고 

이제는 하나님조차 의심하는. 

나는 진노의 대상이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조상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나에게서 멀리 떠났느냐? 그들은 헛된 우상을 섬김으로 스스로 헛된 사람이 되었다. 너의 조상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 광야 가운데서, 메마르고 험한 땅에서, 어둡고 위험한 땅에서, 아무도 다니지 않고 아무도 살지 않는 땅에서, 우리를 인도해 내신 여호와께서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고 묻지도 않는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죄를 지었다. 그들은 생명수 샘인 나에게서 멀리 떠났고, 스스로를 위하여 우물을 팠다. 그러나 그것은 물을 담지 못하는 터진 우물이다."

 

"나는 가장 좋은 씨를 골라 너를 특별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나쁜 열매를 맺는 들포도 나무가 되었느냐?"

 

나는 속으로 '이스라엘이 이런 악한 짓을 한 뒤에 내게로 다시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가서, 북쪽을 향해 이 모든 말을 다 전하여라. '돌아와라, 진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아.' 여호와의 말이다. '너를 향한 나의 노여움을 거두겠다. 나는 매우 자비로운 하나님이다.'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영원히 노여움을 품지 않겠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했고, 다른 나라의 헛된 신들을 섬겼다. 너는 산당이 있는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그 신들을 섬기며, 내게 순종하지 않았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너희 진실하지 못한 백성들아, 내게로 돌아오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다. 나는 너희의 남편이다. 내가 너희를 모든 성에서 한 명씩 모든 집안에서 두 명씩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또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따르는 지도자들을 너희에게 줄 것이니 그들이 지식과 깨달음으로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그 날에 너희의 수가 이 땅에 많아지고 번창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미워하는 네 우상들을 버리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는 진실과 정직과 정의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여라. 그러면 무든 나라들이 여호와의 복을 받고,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다 잠시 Y와 통화했다.

많이 웃을 수 있었고 Y의 이야기가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S 부부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S가 내 안색을 살피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사실 지난주부터 걱정됐다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S가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해줬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닌 그 이상의 사랑을 하려 한다고. 

그런데 그 이상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우리는 선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맡겨드리자고.

그리고 너도 알지 않냐고.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는 절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예레미아를 다시 묵상하는데 나를 향해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 속에 감춰진 나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하나님에게 등 돌린 내게 자신을 바라봐달라는 처절한 마음이었다. 

눈물이 났다.

하나님의 사랑에. 미안하고 감사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등 돌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나 자신이 뻔뻔하게 느껴지고,

매번 묵상하는 말씀이 도대체 내 삶을 변화시키긴 하는 건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대로 살지도 못할 거면, 

말씀을 왜 묵상하는 거냐고. 

나는 맨날 혼나는 기분으로 말씀 앞에 섰다.

한편으론 하나님의 기준은 너무 높다고.

그래서 나 같은 이기적인 사람은 그렇게 못 산다고. 

애초에 풀 수 없는 문제를 주고 왜 나한테 못 푸냐고 책망하시는 거 아니냐고.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 맞다. 

내 안에 뿌리 깊은 죄의 원천인 자기중심성이 강한 것.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다루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 

나는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부분을 건드리실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니까. 

아기가 언제까지고 죽만 먹는 건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아플 때에는 죽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럴 땐 내게 죽을 지어 먹이신다. 

토닥이시며 괜찮다고 해주신다.

사실 다 알고 있다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아셨다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나. 사람을 사랑하는 게 참 어려운 나. 희생하는 게 너무 싫은 나.

알고 있다고.

그러니 그런 모습이 빛 되신 하나님께 다가갈수록 밝게 드러나는 것에 자책하며 하나님을 버리진 말라고. 

변하고 싶어 애쓰는 순간도, 

애써도 안돼서 힘겨운 순간도,

고작 그런 인간인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도

다 괜찮으니 

그 모든 순간을 그저 하나님과 함께 하자고.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께 가지 못할 때

눈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은 내게도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말씀하신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오늘의 한 줌 햇볕, 한 줄기 바람 속에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질책이 하나님과 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일 없이.

기쁘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사실 알고 있어요.

하나님과 같은 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라

하나님을 떠난다는 생각을 했을 때.

사실 너무 슬프고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요.

내 흔들리는 믿음을.

내 흔들리는 사랑을.

그 절박한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사실은

나보다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심령으로 더 기도하고 계셨던 성령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쓰고 달고 매운 거 다 맛보며 둘도 없는 사이가 되는 것처럼. 

내 영혼의 남편 되신 하나님과도 쓰고 달고 매운 거 다 맛보며 끝까지 하나님 곁에 있을게요.

그러니 우리 좋을 때도, 힘들 때도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