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치앙마이-내 인생 도시와의 첫 만남(3)

2020. 3. 24. 22:36창문 밖 풍경: 여행/해외 여행

아기자기한 골목 ⓒ정오의달

 

홀로 숙소를 나와 동네를 걷는데 한 태국인 남성이 말을 걸었다. 혼자이기도 하고, 외국인이 괜히 친한 척하며 말을 거는 건 무슨 속셈이 있겠지, 라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단순한 질문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기는 방콕에서 일하는데 휴가를 맞아 치앙마이에 놀러 왔다며, 선데이 마켓을 구경할 때에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은 치앙마이에 여러 번 와서 이 동네를 잘 알고 있다며 원한다면 동네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 가이드가 생겼다는 마음에 솔깃했지만 마사지를 받으러 갈 생각이었기에 당장은 시간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나중에 만나서 해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저녁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에게 이런 사람을 만났다며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친구는 한나절 푹 쉬고 나니 활동할 수 있는 컨디션을 회복해서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한국인 여성 둘과 태국인 남성 한 명은 그렇게 함께 선데이 마켓을 구경했다. 그러다 친구 없이 나와 태국인 친구 둘이서 좀 더 구경을 하게 되었다. 태국인 친구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며 구경하니 확실히 더 흥미롭게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사실 지름길이라며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설 때엔 혹시 이 곳에서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 좀 무섭다.'라고 말했더니 '아니야, 이곳 안전해. 여기 게스트 하우스도 있어.'라고 말하며 길을 안내하던 그의 말이 기억난다. 마냥 고마워할 수 없는 마음.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마음이 여행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종류인 것 같지만 상대방은 나에게  온전한 호의를 베푸는 것 같을 때 좀 미안했다.

 


 

그 골목길을 돌아 나가니 란나 왕국의 오래된 유적 왓 쩨디 루앙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주 훌륭한 가이드였다. 왓 쩨디 루앙은 바로 나오지 않고 평범하게 생긴 사원을 지나면 뒤편에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위치에서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을 잡고 걸어오라고 했다.

몇 발 자국 걸은 뒤, 눈을 들어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라고 했는데,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여운이 남아있다.

분명 내가 들어온 곳은 평범한 색조와 금빛을 입힌 사원이었는데 내 눈 앞에는 하나하나 돌을 직접 쌓아 만든 듯한 거대한 돌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던 건 탑의 일부가 무너져 어둠과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탑 위로 밝게 빛나는 달. 너무도 신비로웠다. 나는 말을 잃고 한동안 탑을 바라보았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신비로운 왓째디루앙 ⓒ정오의달

 

그렇게 그의 가이드를 신뢰하게 된 나는 다음날도 만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우리는 다음날도 함께 만나 근처 현지인들의 시장, 와로롯 시장을 구경했다. 그 안에서도 그가 추천하는 현지인 맛집에 가서 국수를 한 그릇 했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는 역시 맛있고 저렴했다. 그리고 그렇게 구경하다 그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사라졌다. 그런데 곧이어 나타난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장미꽃 2송이였다. 그는 나와 내 친구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씩 선물했다. 태국에서 이런 로맨틱함을 느껴볼 수 있다니. 내 여행에 난데없는 로맨틱함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고백을 했다. (갑자기?)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나의 짧은 영어에 의지한 대화 시간이었지만 그는 뭔가 좋았나 보다.(응, 아니야.) 그러나 나는 그의 고백을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넌 불교고! 난 기독교야!) 노스게이트 재즈바에 가는 것을 극구 말리던 그를 두고 나와 친구는 노스게이트 재즈바로 가는 썽태우에 몸을 실으며 거절에 쐐기를 박았다. 우리는 다음날도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지난 메일함을 뒤져가며 짚어보니 그는 나에게 치앙마이와 관련된 영상 링크를 보내주는 메일과 더불어 뜬금없는 차 사진을 보내며 이 차를 사주면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런...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기꾼 티를 냈었는데! 그땐 이미 받은 호의가 크게 느껴져 내 눈을 가리고 그게 잘 보이지 않았다. 역시 해외에서 내가 요청하지 않은 호의를 먼저 베풀려고 다가오는 사람은 경계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반은 고맙고, 반은 경계하는 여행자의 마음을 지키며 여행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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