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치앙마이-내 인생 도시와의 첫 만남(4)

2020. 3. 24. 22:38창문 밖 풍경: 여행/해외 여행

오늘은 올드타운과는 다른 신시가지인 님만해민 지역을 놀러 가는 날이다.

님만해민까지 가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우리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걸어가기엔 좀 멀고 썽태우는 낭만이 없고 역시 주변 풍경도 구경하고 바람도 느낄 수 있는 자전거가 딱이라고 생각했다.(이때만 해도 우버나 그랩은 없었다.)

 

이런 곳도 물론 누비었습니다만....ⓒ정오의달

 

그래서 자전거를 빌려서 올드타운에서 님만해민까지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올드타운의 골목골목을 다닐 때에는 아기자기한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악몽은 큰 도로에 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떤지 아무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니...

 

어라... 여기가 아닌데?ⓒ정오의달

 

우리는 어느 순간 차와 오토바이와 함께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우리의 속력은 겨우 시속 20킬로. 어쩌다 보니 신호가 걸렸을 때엔 우리가 오토바이와 차들을 제치고 맨 앞에서 신호를 대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함께 대기하던 모든 차와 오토바이가 빵빵거리며 욕지거리를 해댔을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태국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도 우리에게 빵빵거리질 않았다. 미소를 띤 채 우리 곁을 지나가기도 했다. (황당하다는 웃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도 이런 상황이 될 줄 예상하지 못한 참이었길래 상당히 당황스러웠는데 그런 우리에게 사소한 친절-빵빵거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 행동이 주는 위안이 너무도 컸다. 이 나라의 바퀴 달린 것들을 운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광을 돌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당신이 보살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님만해민에 도착한 우리는 어묵국수와 망고를 먹고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을 떠올리며 이대로는 못 간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장딴지는 운동에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이었기에 이 녀석을 구슬려서 먼 길을 떠나려면 마사지라도 받아야 했다. 한 시간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여정길에 올랐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음에 감격했다.

 


 

 

감격도 잠시, 돌아오자마자 짐을 챙겨 새로운 교외의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중심지가 아닌 교외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정원이 참 예쁘고 밥맛이 기가 막히다던 숙소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썽태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렸던 거 같다. 그런데 예상 밖의 상황이 또 펼쳐졌다. 첫 번째, 썽태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어느새 해가 져서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이곳은 시골이라 가로등도 제대로 없다. 두 번째, 우리가 내린 곳은 왕복 8차선 도로의 가장자리다. 우리의 숙소는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우리는 둘 다 데이터 유심을 사지 않았다. 오로지 와이파이만 의지하며 살겠노라는 결단을 하고 태국여행을 떠나왔다. 당연히 도로 한복판인 이곳에 와이파이를 연결할만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네 번째, 우리 손에 들린 거대한 캐리어가 우리의 이동을 부자유스럽게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숙소의 주소를 캡처한 것뿐.... 무슨 패기로 그런 선택을 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지만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여행에 던져졌고, 무엇이라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내린 곳에서 반대편에 있는 마을 쪽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왕복 8차선 도로를 깜깜한 곳에서 캐리어를 들고 무단횡단을 해야 했다. 정말 위험한 일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주변에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았으니... 그래서 상황을 봐서 냅다 뛰었는데 정말 아무 일 없이 건넌 게 감사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제 건너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우리는 일단 도로가를 따라 캐리어를 끌며 걷기 시작했다. 

옆으로는 차와 오토바이들이 지나갔다. 우리는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을 바라보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손짓하여 멈춰 세웠다. 

그 오토바이에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 학생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는 태국말이란 사와디 카, 컵쿤카뿐.... 그래서 그의 핸드폰으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우리가 이곳에 가야 함을 알렸다. 그는 걸어가기엔 멀다고 하더니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너무너무 고맙다고 반색했다. 그런데 우리 몸만 한 캐리어는 어쩌지? 고민도 잠시, 풀숲에 던져놓고 나중에 찾으러 오기로 하고 우리는 그의 뒤에 옹기종기 붙어 앉았다. 그의 오토바이는 출발했고 구불구불한 동네길을 한참 들어가더니 우리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곳을 어떻게 걸어올 생각을 했던 거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왜 이렇게 무모한 걸까? 왜 우리는 미리 이런 걱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던 걸까. 신기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연락도 안되고, 밤은 깊어가는데 너무 걱정했다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손짓 발짓으로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짐을 다 버리고 온 우리는 뭐라도 주고 싶은데 줄 수도 없어 얼마나 미안하고도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 청년은 떠나고, 우리는 짐을 가지러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다시 짐이 잠들어 있는 그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짐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우리의 짐 곁에 서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바로... 우리를 태워주었던 오토바이 학생이었다. 우리의 짐이 혹시나 사라질까 봐 곁에서 우리 짐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다. 우리는 감동 폭발... 이런 게 찐 친절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그에게 방콕에서부터 고이 들고 왔던 스타티스 꽃다발과 먹을거리를 선물로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고 싶어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치앙마이의 천사 청년으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치앙마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 담긴 특별한 음식으로 긴장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이며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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