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핑 크리스천 by.채영삼 교수

2021. 10. 18. 00:00첫번째 서랍: 나의 믿음/묵상

오늘 주보에 실린 짧은 글.

너무 와닿았던, 폐부를 찌르던 말씀이어서 기록한다. 


번지점핑 크리스천

채영삼


구원론에 붙잡혀 있건, 세상적인 복에 붙잡혀 있건, '나'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오늘날 많은 경우에, 신앙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있다. 죄로부터의 자유, 가난과 병으로부터의 자유 등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 믿어서 자유를 누린다. 일방적인 설명이기는 하지만 오직 은혜, 오직 믿음, 하나님의 예정과 같은 교리조차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서 설명되면, 그만 미궁에 빠지기 쉽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만 있고, '무엇을 위한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은 제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보인다. 물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나의 실패, 나의 실수, 나의 부족함, 연약함을 얼마든지 능가하시는 열심과 사랑으로 나를 붙드신다. 오직 은혜이다. 나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은 실패될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지점프 크리스천'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번지점핑이 무엇인가? 위험천만하게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아찔할 뿐이고, 스릴까지 있다. 모두 용서하시겠지. 어차피 은혜니까. 예정되어 있잖아. 하나님의 사랑이 실패하겠어? 그리고는 뛰어내린다. 노아의 방주의 비유를 잠깐 빌리자. 일단 방주는 물 위에 떠 있다. 물은 심판의 상징이다. 그렇지 않은가? 물 밑에는 죄와 악에 대한 형벌과 심판의 결과로 죽은 시체들이 가라앉아 있다. 방주는 안전한 곳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다. 하지만 방주가 마른 땅으로 새하늘과 새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향성을 모르면 그저 할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어차피 방주에 묶어둔 밧줄에 달린 구명튜브로 허리를 둘렀다. 그 구명튜브에는 '오직 은혜', '행위가 아니라 믿음', '예정론'의 라벨이 붙어있다. 그리고 일단 뛰어내린다. 방주 속에서의 답답한 일상보다는 훨씬 시원하고 짜릿하다. 그리고 또 물 위로 올라온다. 물속 깊은 곳에는 죄로인해 형벌을 받아 익사한 시체들이 떠다니기 때문이다. 죽을 운명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 방주 위로 올라와, 소중한 구명튜브를 매만진다. 

 이것이 자유로 악을 가리는 행위이다. 이스라엘도 이처럼 하나님 믿고 그 자유와 복 안에서 망했다. 오늘날 교회도 번지점핑 크리스천들로 가득하다. 유명무실하다. 방향과 목적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은 이동이다. 구원은 티켓이 아니다. 물속에서 건지신 이유는 이제 마른 땅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것은 주께서 우리를 얼마든지 용서하실 것을 확인하시려 하심이 아니다. 그 자유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비로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자유, 비로소 선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아볼 기회, 비로소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번지점핑 크리스천에서 벗어나라. 노를 손에 쥐고, 죄의 바다를 건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라. 남은 날들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 제사장의 역할을 다하라.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삶이란게 무엇인지 

방향을 잃어버린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었다. 

 

이 글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내가 딱 '번지점핑 크리스천'처럼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 다 아시니까.

자기중심적인 모습에 갇혀 있어도

돈과 즐거움,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열심을 내며 살아가도

다 이해해주실 거야.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뭐..

이건 인간적인 내 한계인 것 같아. 

그래도 하나님께선 자녀인 나를 끝까지 사랑하실거야. 

 

이것이 자유로 악을 가리는 행위이며,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것은

주께서 우리를 얼마든지 용서하실 것을 확인하시려 함이 아님을.

나는 그 자유를 오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내 맘대로 누리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자유 

선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아볼 자유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볼 자유 

라는 것을...

 

요새 말씀을 깊게 묵상하지 못했지만

출근길에 짧게 말씀 영상을 보거나, 

주일 예배 때 말씀을 듣고, 

체다카 모임 때 말씀을 묵상할 때

동일하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마음은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가서 

삶을 다시 정비하고, 

내게 주신 선물인 자유를

내 죄를 용서받는 일에만 사용하는 1차원적인 선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갖기를 소망했던

돈에서 자유하고 

건강에서 자유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하고 

내 안의 다양한 욕심에서 자유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뤄가는 기쁨을 맛보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