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0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맞는가

2021. 3. 11. 00:28첫번째 서랍: 나의 믿음/묵상

엄마 손에 이끌려 다니게 된 교회. 

그렇게 문화로서 기독교를 접하고 살아가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믿게'된 것이 20살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신앙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임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그 분의 자녀삼아 주시는 은혜를 베푸심을,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될 것임을. 

그렇게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구원의 확신'이라는 믿음 아래 내 신앙은 점검되지 못한 채 점점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교회 생활, 수많은 설교로 머리는 커져갔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늘어갔지만 나와 하나님과의 '실제 관계'는 깊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저런 말씀들을 내 입맛에 맞게 짜깁기해서 자기합리화를 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킹덤빌더스쿨' 강의를 듣고, 말씀을 (간간이) 보며 요새 느끼는 점을 적어본다. 

 

나는 시작이 잘못 꿰어진 단추처럼 살았다.

신앙과 삶의 균형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

 

내 (거짓)자아와 하나님을 공존시키는 일을 고민했지 

내 (거짓)자아를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는 것은 회피했다.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열심히 하는 걸 바라지 않으셨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한 마음으로 임하는 걸 바라셨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 내가 잘 되게 해달라고, 내가 성숙하게 해달라고

그런 나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고

결국 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3

 

사단은 자신의 소유와 능력으로 피조 세계에 국한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속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일치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책략이며, 바로 그들이 노리는 틈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국한된 삶만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나타내는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능력, 소유, 관계 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만드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창조성과 성품을 나타내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거짓자아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사단은

1)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2)물질세계에 국한된 사고방식을 가지게 하고,

3)주어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지식과 능력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하고, 

4)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5)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도록 만든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2-3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기도 열심히, 내가 말씀 열심히, 내가 봉사 열심히...

결국 내가 주체가 된 삶은

인격과 삶의 변화가 없는 삶이 된다.

내 안의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내가' 드러나는 삶인 것이다.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말씀을 통한 체험이 없게 된다.

개념적인 신앙 생활만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모습이었다.

신앙생활을 스스로 마음먹고 한 지 십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린아이가 부모한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조르는 모습이다. 

내 힘으로, 내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적정선을 찾아내려고 아등바등했다.

 

"이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아서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있다. 

믿는다는 것은 천국행 싸구려 티켓을 얻는 게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로마서 6:5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믿음이라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적이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실 20살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을 때는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시겠다고 고백했었다.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겠다고, 마음으로 고백했었다. 

그리고 내 삶도 회심과 함께 변화했었다. 

하나님과 말씀을 통해 교제하는 기쁨이 가득했었다. 

새로 사귄 연인처럼, 말씀을 배워가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벅차고 행복했었다.

내 삶도 변화했었다. 

분노의 대상이었던 아빠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분명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라는 깨달음을 통한 은혜였다.

 

그런 시간들은 거짓이었을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래된 연인이 서로의 소중함에 대해 무뎌지고

찬란했던 일상이 매너리즘에 무채색으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내 신앙도 어느 순간부터 생기를 잃어갔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내 믿음은 20살에 시작과 동시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믿었으면 된 거 아니야?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였다.

내가 가꾸지 않으면, 돌보지 않으면 시들고 만다. 

구원은 '확신과 불변'이 아닌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것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지점에서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아도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진 상태라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켜지지가 않는' 마음 상태였다.

그래서 요사이는 마음이 많이 침잠되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죄스럽고, 부끄러웠고, 자괴감이 들었다.

말씀의 빛 앞에 나를 비추이면 나의 어둠이 너무 드러나서 말씀을 보는 게 괴로웠다. 그래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오늘은 내 마음 속에서 20살의 내가 했던 그 고백이 진심으로 나온다.

'하나님, 제 삶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놓치 못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긍휼히 여겨 주세요.'

'성령님, 제 마음을 주관하여 주세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분명히 죄를 밝게 비춰서 보게 하는 분이시지만 

그 죄 때문에 자녀를 버리시는 분은 아니구나. 

돌이킬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구나. 

하나님의 은혜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것이구나.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훈계 속에서 '주며들고(주님께 스며들고ㅎㅎ)' 있었던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도.

인생을 살며 또 다시 내 자아가 강하게 드러나는 때가 온다고 해도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를..

사단이 가장 원하는 바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