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가 아닌 로맨티스트가 되어

2020. 7. 7. 10:34첫번째 서랍: 나의 믿음/묵상

사무엘하 3:1-21

 

사울의 집안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윗의 추종자들 사이에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안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사울의 집안을 지지하는 자들과 다윗의 추종자들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브넬은 사울의 집안을 지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점점 자기 세력을 굳혀 갔다.

 

그가 사울의 첩 중에서 아야의 딸이었던 리스바와 정을 통하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자기 아버지의 첩을 간통했다고 아브넬을 책망하였다.

 

그러자 그는 격분하여 이렇게 외쳤다. "내가 유다 편을 들 개 같은 인간으로밖에 보이질 않소? 내가 오늘날까지 당신의 부친 사울의 집안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다윗의 손에서 건져내었는데도 당신은 이까짓 여자 하나로 나를 책망한단 말입니까? 이제부터 내가 다윗을 돕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끔찍한 벌을 내리실 것이오.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도록 할 것이오."

 

그리고서 아브넬은 다윗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다. "이 땅이 누구 것입니까? 나와 협상합시다.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넘어갈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좋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네가 사울의 딸 미갈을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협상하지 않겠다."하고 아브넬에게 통보한 다음 이스보셋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다. '내 아내 미갈을 나에게 돌려 주시오. 내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의 포피 100개를 상납하였소.'

 

그러자 이스보셋이 미갈을 그녀의 남편 발디엘에게서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바후림까지 울면서 자기 아내를 뒤따라오자 아브넬이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갔다.


묵상도움: 이정도 목사님

 

사울이 죽은 후, 사울 집안의 추종자들과 다윗의 추종자들은 국지전을 계속했다. 

백성들은 전쟁을 통해 죽어갔지만 사울 집안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브넬과 다윗의 군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작은 전쟁은 그들의 존재 이유며, 힘을 키워주는 수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윗의 세력은 강해져갔다.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한 아브넬은 사울 편이었지만 세력이 강해지는 다윗의 편에 안전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권력자로서 선대 왕이었던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와 동침함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한다. 리스바를 사랑해서 동침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이스보셋은 아브넬을 책망하지만 오히려 아브넬은 내가 너를 왕으로 만들었고 너희 집안에 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여자 하나로 자신을 책망하냐며 역정을 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 일을 꼬투리잡아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기겠다고 선포한다.

힘없는 이스보셋은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전혀 대항하지 못한다.

아브넬과 다윗은 그 뒤로 꿍짝을 맞춰간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유다 전체의 왕이 무리없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사울의 딸인 미갈을 다시 자신의 아내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미갈과 다윗은 결혼한 적이 있으나 다윗이 사울의 핍박을 피해 도망간 이후로 헤어졌다.

그 이후 미갈은 지역 유지였던 발디엘과 다시 결혼을 한 상황이었다.

다윗은 미갈에게 애정이 있어서 다시 미갈을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미갈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미갈이 원한다면 다시 아내로 삼겠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에게 미갈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자신이 안정적으로 왕이 되기 위해 정략적으로 필요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남편과 잘 살고있는 미갈을 다시 떼어내 데려오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상황에서 미갈은 다윗에게 끌려가고 새 남편이었던 발디엘은 울며 미갈을 따라온다.

미스바와 동침한 아브넬도, 미갈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한 다윗도 그 마음에 사람을 향한 진실된 사랑은 없었다.

두 사람은 현실주의자로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한다.

하지만 오로지 한 사람, 발디엘은 진정으로 미갈을 사랑한 로맨티스트였다.

그래서 울며 미갈의 뒤를 따른다.

군대를 이끌고 온 아브넬의 "꺼져라"라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던 슬픈 로맨티스트였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이와 같다.

우리가 인간관계, 사업, 정치를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살면 짓밟히게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낭만을 버리고 현실주의자가 되어서 내 이득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세상에 의해 짓밟힌 발디엘처럼 예수님도 세상에 의해 짓밟히셨던 로맨티스트셨다.

모든 인간, 나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던 분.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도 저들이 몰라서 하는 일이니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했던 분.

진정한 로맨티스트.

예수님께서는 로맨스가 승리하는 세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현실주의자보다 인정받는 세상을 만드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잘 믿으면 나에게 뭔가 이득이 되겠지.'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낭만주의자가 아닐까.

나한테 도움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

핍박 속에서도 울면서 미갈을 따라갔던 발디엘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