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월호 6주기입니다.

2020. 4. 16. 22:07세번째 서랍: 일상 이야기

최근에 읽었던 '깨끗한 존경(by.이슬아)'에 나왔던 정혜윤 라디오 피디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봅니다.

정혜윤 피디가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세월호의 진상 규명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유족들이 입 밖에 절대로 내지 않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입안에 맴돌아도 그 말은 안 해요. "너도 한 번 당해봐"라는 말이에요. "시신 장사 하냐"는 말을 들으면 '당신도 한 번 겪어보세요.'라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서 참아요. 자신의 윤리로는 할 수 없는 말이라서요. 그 이유는 자기가 겪고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어지간히 고통스러워야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할 텐데, 인간으로서 그 말만은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그 분들은 '당신도 당해 봐라'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인간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족들은 말하죠.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사람들이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 뒤에 있는 세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사회뿐 아니라 우리의 차가워진 인간성도 변해요.

 

-내가 진짜 힘든 건 내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를 이해하고 싶어도, 내가 그 사람은 아니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도 외로울 수 있어요. 유족들과 공감하고 헤어져봤자 우리의 저녁은 다를 거예요. 그게 그 사람에겐 슬픔이 돼요. 

 

-모든 출연자가 재난참사 유족이고 진행자도 유족인 방송이었어요. 세월호 가족인 유경근 선생님이 진행자였고요. 팟캐스트에서 다시 들을 수 있어요. 이 방송에 대해서는 할 말이 산더미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연대에 대해 진짜로 배웠다는 거예요. 연대는, 온갖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은 덜 겪도록 최대한 알려주는 것이더라고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해. 그러니 내가 겪은 모든 걸 알려줄게.' 이게 연대예요.

특히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 선생님하고, 화성 씨랜드 참사 유가족인 고석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99년에 화성에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건물이 있었어요. 온갖 비리로 뒤엉킨 가건물이었어요. 소망유치원에서 애들을 데리고 거기로 갔어요. 근데 불이 나서 유치원 아이들과 강사 23명이 죽었어요. 불에 타서 시신 확인이 불가능할 만큼 참혹했어요. 

방송에서 두 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요. 그 화재로 쌍둥이를 모두 잃은 고석 선생님 앞에서, 세월호 유경근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해요. "우리 예은이는 일주일 뒤에 와서, 피부가 만지면...그 모습이 꿈에도 나오고 괴로운데, 그래도 제가 차마, 불에 타서 죽은 그 고통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고석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요. "유독 가스를 마시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서 자기 몸이 불에 타도 타는 줄 모른대요. 그게 저의 유일한 위안이에요. 그런데 세월호 아이들은 의식이 있는 채로 그 고통을 다 겪어야 했잖아요. 우리 세월호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렇게 서로 얘기해요. 어떻게든 상대방을 위로하려고 말하기도 힘든 자기 고통을 말해요. 상대방이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요. 두 분이 나누는 마음은 '당신은 얼마나 힘든가요.'예요.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존경심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유족들을 불쌍하다고, 안 됐다고 착각해요. 절대 아니에요. 너무 슬프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용감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깊을 수 있구나, 하는 존경과 감탄이 저를 움직이는 거예요.